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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심각한 사랑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09.24 21:53

    오늘 내가 먹은 것이라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 김밥 하나가 전부였다. 여기는 남자의 방.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두 팔은 뒤로 묶여 있었다. 남자는 나의 전 남자친구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옛 애인의 방에 감금당한 것이다.
     
    남자와 나는 대학 선후배 사이였고, 교제 기간은 1년 반. 하지만 내가 그를 사랑했던 기간은 처음 3개월뿐. 그 뒤로는 어쩔 수 없이 연인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남자에게 한번 헤어지자고 말했다가 남자는 면도칼로 손목을 긋고 죽어버리겠다는 둥의 협박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사람은 뭔가 특별한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이 남자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남자였다.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소문으론 학창시절부터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꽤 많았다고 했다. 1년 반쯤 만났던 시간을 뒤돌아 봐도 나 역시 남자의 특별한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승부욕이 조금 강한 편이긴 했지만, 20대 초, 중반의 남자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질투가 심한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티를 내는 편도 아니었고...... 하지만 만나는 동안 늘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긴 했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말을 아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해 겨울, 크리스마스 근처. 나는 결심했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시간을 점점 줄이고, 결국 조심스럽게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남자의 반응은 처음과 달랐다. 남자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알았다고만 했다. 놀라울 정도로 담담한 얼굴을 하고 등을 돌리고 갔다.
     
    ‘이번에도 죽겠다고 나를 협박하지 않을까? 아니면 이번엔 나를 죽인다고 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어쨌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힘들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새 고민했던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나 홀로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해가 바뀌고 졸업반이던 남자는 학교를 졸업했다. 좋은 직장에 취직도 했다는 건 학교 친구들이 말해주어 알고 있었다. 잘된 일이었다. 나는 그 봄, 다시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 동갑내기 남자였고, 활동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정말 죽을 만큼 사랑하는 건 아니었지만, 함께 있으면 즐겁고 좋았다. 하지만 나는 늘 이 정도의 관계가 좋았다.
     
    서로 각자의 자리를 너무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함께 하는 것.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한다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절대 자기애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해 봄, 새로 시작한 연애는 순조로웠다. 새로운 남자친구와 여름 방학에는 남해의 어느 작은 섬으로 배낭여행을 가기도 했다. 우리는 곧 졸업과 취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예민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 남자는 자기만의 생활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런 점이 좋았다.
     
    그리고 가을. 토익 시험을 앞둔 주말 핸드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이미 주소록에서 지운 번호라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전 남자친구였다.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안부를 묻던 남자는 줄 것이 있다며 나를 자기 집 앞으로 불렀다. 아마도 예전 우리가 만나던 때 내가 선물로 준 것들인 듯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갖고 있기가 그러면 그냥 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름 고민해서 전화 했을 텐데, 싶어 알겠다고 해 버렸다. 그러니까 이게 첫 번째 실수였다.
     
    오랜만에 본 남자는 예전보다 약간 살이 빠진 듯 했지만, 1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커피숍에 앉아서 어색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남자가 선물을 집에 두고 왔다고 같이 가지러 가자고 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남자와 함께 커피숍을 나섰다.
     
    나란히 걸으니, 문득 나와 남자가 연애하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 남자는 정말 나를 사랑해주었다. 내가 꽃나무라면, 남자는 언제나 옆에서 나를 지켜보며 듬뿍 물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넘칠 정도로 충분했던 물 때문에 결국 시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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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아직도 학교 근처의 원룸에 살고 있었다. 잠시 후, 문 앞에 나를 세워놓고 물건을 가지러 간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예전 우리가 사랑했을 때의 느낌과 똑같아서 나도 모르게 남자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두 팔이 묶였다.
     
    남자의 눈빛은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방은 어지러웠고, 나는 그 가운데 놓인 의자에 묶였다. 아마도 졸업 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듯했다. 그 분풀이로 나를 잡아 가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해치지는 않을 거야. 대신 이 방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넌 나를 이해해야 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건 너밖에 몰라줄 일이니 넌 나를 인정해줘야 해. 헤어지고 나서는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어. 내 관심은 오직 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오직 너만 사랑하는 일인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넌 이런 날 미친놈 취급했지.
     
    남자의 눈을 슬펐다. 그래서 나는 어떤 두려움보다도 측은함이 앞섰다. 사실 의자 뒤로 묶인 양 손목의 끈도 느슨했다. 남자는 혹시나 내가 소리를 지르고 도망칠까 두려워하며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지만, 내가 반항하지 않자, 손을 멈추고 대신 냉장고에서 삼각김밥과 오렌지 쥬스를 가져왔다. 그리고 먹여주었다. 남자의 눈빛은 예전과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감금당한 내가 남자를 측은하게 생각될 지경이었다.
     
    어지러운 방 안, 냉장고 안은 제대로 된 음식이라곤 없고 편의점에서 파는 식품이 다 인 것 같았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남자의 말대로 정말 나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게 된 걸까?
     
    삼각 김밥을 한 입 베어 물고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자, 남자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편의점에 가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나가고 몇 분이 흐르고, 나는 손목에 묶여 있던 끈을 스스로 풀었다. 급하고 서툴게 묶은 터라 매듭도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방을 살폈다. 책상, 서랍. 책장 위에 액자에는 내 사진이 아직도 올려져 있었다.
     
    곧 남자가 도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핸드폰을 열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남자보다도 먼저 도착했다. 경찰이 도착하고 몇 분 뒤 남자는 음식이 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도착했다. 편의점이 아니라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마트에 다녀온 것 같았다. 경찰은 신속하게 남자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다. 순간 바닥으로 비닐봉지가 떨어졌다. 비닐봉지 사이로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이 가득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으로 경찰차에 오르니 기분이 이상했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보니 약간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도착한 경찰서에서 사건 경위 조서를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유치장 안에 있는 남자가 궁금했다. 집으로 가기 전에 남자의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자 싶어 유치장 쪽으로 가니 남자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남자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유치장 앞으로 다가갔다. 귓속말을 시도하는 남자.
     
    '불쌍한 건 너야. 너는 아마 평생 그 누구도 진짜 사랑할 수 없을 거야.'
     
    이렇게 말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눕던 남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 했다. 아니, 아무 것도 생각 할 수 없었다.

     

     

     

    글: 김얀(http://kimyann.tistory.com/)

    일러스트: RD(@RDRDRDRDRDRD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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