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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사랑은 사랑으로 잊고, 몸은 몸으로 잊기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8. 21. 17:30

    애인에게 이별 통보 메일을 받고는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주소록 버튼을 누르고,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쭈욱 당겼다. 검지 아래로 주르륵 떨어지는 수많은 이름 중에서 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꾹 눌렀다. 전화연결. 그리고 짧은 통화.

     

     

     

    약간의 화장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는 집 근처의 작은 커피숍.

     

    약속 정각에 도착한 커피숍. 먼저 카운터에서 과일 주스를 시켜놓고 내가 늘 앉는 자리로 가니 Y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1년 만인가? 달라진 거라곤 짧아진 머리. 약속 시각에 늘 먼저 나와 있는 건 1년전이나 그대로 였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만나는 동안은 크게 싸우는 일 없이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섹스였다. 섹스할 때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펑펑 울 정도가 된다는 것을 이 남자와 잤을때 처음 경험했다. 그 뒷날 친구들에게 얘기했을때 아무도 믿지 않았고, 나 역시도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느낌을 알고 나니 다음번 부터는 섹스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터널 션샤인.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없애는 기계는 아직 스크린 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으로, 몸은 몸으로 잊는게 그 사람과의 기억을 가장 빨리 잊는 법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내 연락은 다 씹더니..."

     

    "그냥, 뻔하지 뭐. 일하고 연애하고, 나야 뭐 늘 그렇지."

     

    "근데 이제는 둘 다 안하는가 보네, 이렇게 먼저 연락한 걸 보면?"

     

    아, 맞다 Y는 말이 많았지? 이제야 생각났네. 순간, 괜히 연락했나 싶기도 했다. 나는 그런 대화는 더 하기 싫다는 표정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어나자. 나 피곤해. 좀 눕고 싶어."

     

    "응? 오자마자 가게?"

     

    "응. 좀 눕고 싶어. 너네 집에 가자."

     

    우리는 택시를 잡으러 나갔다. Y는 내 표정을 이제야 이해했는지 택시 안에서 내내 내 눈치를 살폈다. Y의 집은 우리집에서 10분 근처의 원룸이었다. 나는 Y를 만난 첫날에 이 집에 왔었다. 그리고 그 뒤로 대여섯번 더 왔었고, 그 뒤로는 지금까지 아예 만난 적이 없었다.

     

    "편한 옷 줄까?


    "아니, 됐어. 어차피 다 벗을 건데 귀찮게 뭘 더 입어?"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침대에 앉아 주위를 살폈다. 책상의 위치가 바뀌었나? 방 공기를 맞으니 예전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침대 아래에는 양말과 티셔츠들이 흩어져 있었다. 먼지 하난 없던 전 애인의 깔끔한 방과는 정반대였다. 입고 있던 원피스를 벗어서 바닥에 던져놓고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냉장고에서 물을 마시고 침대로 걸어오던 Y가 무심결에 내 원피스를 밟았다. 내가 옷을 벗고 누우면 언제나 옷걸이에 옷을 걸어주던 애인과는 너무 달랐다. 사람을 잊으려고 사람을 만났는데, 이거 자꾸 비교되어 생각이 나다니 좋지 않다.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니, 진짜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남자친구랑은 언제 헤어진 거야?"

     

    "조금 전에."

     

    "헐, 진짜? 방금 전에 헤어지고 바로 나한테 전화한 거야? 이 여자 진짜 못됐네. 그럼 너 지금 나 이용하는 거야?"


    남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그게 나쁜거야? 누구한테 이용당할 가치가 있다는 건 그래도 아직 그 사람한테 필요한 사람인 거잖아.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는 그럼 어디가서 치료해?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약도 없어. 그냥 사람한테 치료 받는거야. 너야말로, 나랑 만나고 있다가 전 여자친구한테 가버릴 때는 언제고, 그 뒤에 다시 바로 연락했었잖아. 그건 뭐였어? 그런데 니가 지금 누구한테 못됐다, 어떻다고 할 수 있어?"

     

    "그.. 그러니까.. 그때 난 너 이용하려고 했던 거 아니였어..."

     

    "상관없어. 날 이용하려거든 이용해도 좋아. 대신 서로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돼. 그래, 잘 됐네. 그냥 이렇게 서로 이용하면 되겠네. 그래서 서로 상처가 치료될 때까지..."

     

    남자는 내 이야기를 이해한 건지, 이해를 못 한 건지, 아니면 이런 내가 싫은 건지, 아니면 안쓰러운 건지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나 역시도 알 수 없는 기분이였다.

     

    "그냥 나 좀 안아주면 안돼?"

     

    오늘 이남자와 이렇게 있다가 섹스를 한다면 최고조에 다다르지 않아도 펑펑 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오늘 누구에게 안겨 펑펑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 배앓이를 하면 약보다도 엄마 손이면 더 편안해지는 것처럼. 사실 사랑도, 그 사랑을 잊게 하는 것도 섹스가 아닌 사람의 온기가 아닐까.

     

     

    RD(@RDRDRDRDRDRDRD)

     

     

     

    글: 김얀(http://kimyan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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