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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2011년 서울의 흔한 연애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10. 17. 20:50

    영양가 없는 남자였다. 마치 참외껍질처럼.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정로환 같은 똥을 싸는 염소에게나 던져줄 만한 남자였다. 그러니까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참외껍질 같은 남자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바다를 보러갔었다. 먼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건 나지만 바다에 도착하고는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오이도였나 인천이었나?

     

    3월 중순이었지만, 밤바다의 바람은 몹시 찼다. 누가 옆에서 "내일은 크리스마스야."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추웠고 그래서 나는 그 남자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 근처의 모텔에서 1박을 했었다. 후에, 나는 그 남자를 내 방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밤이었다. 열두시가 넘은 새벽. 내 방 창가로 보이는 대형마트도 마감을 했는지 어두웠다. 도로에는 몇 대의 차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은 영등포시장역 근처의 방음이 잘 되지않는 원룸이었다.

     

    잠은 오지않고 어짜피 출근을 할 직장도 없으니 누군가와 함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지금이 몇 시든, 그게 누가 되었든. 그도 역시 그 시간 누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한 걸까?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이태원근처에 산다던 그는 삼십분도 되지 않아 나의 방에 도착했다. 막 잠에서 깬 얼굴인건지, 막 잠들이 시작하려는 얼굴인건지 눈빛이 조금 피로해 보였다. 생각해보니 남자는 내일 출근을 해야 했다. 조금 미안해진 생각이 들어서 부지런히 커피를 준비했다. 전기보트에 물을 올리고, 이사와선 한 번도 쓴 적 없던 고급 찻잔 세트를 꺼냈다. 커피는 지난 번 홍대의 어느 커피집에서 샀던 말레이시아 산 커피였다. 가격도 적당했고 맛도 좋은 커피다. 물이 끓고, 정성껏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예쁜 찻잔에 담아 남자에게 커피를 건넸다. 접시에는 쿠키도 몇 개 담았다. 헌데 그 남자는 마시지 않고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뭔가 즐거운 이야기를 해 주자는 생각이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남자는 내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저 내 입술에 묻은 커피를 원했다. 피로한 눈빛으로 다가와 나를 안는 남자를 밀어버리자 그는 그때서야 잠에서 깬 듯 나의 방에서 나가버렸다. 창밖을 내려다보자 주차된 차로 저벅 걸어가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살짝 적신뒤 창문을 열어 남자의 머리위로 침을 뱉었다. 물론 5층에서 뱉은 내 침은 남자에게 적중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저 입술을 적인 나의 혀에서 말레이시아 산 커피 맛이 났다.

     

    그 남자와는 그게 마지막 이었다. 총 다섯 번 정도 만났는데 아직도 남자의 성은 기억나지않는다. 아마 물어본 적이 없거나 가르쳐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얼굴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밤, 남자가 먼저 나에게 샴푸 껍질에 써 있는 의미 없는 말이라도 먼저 건네주었더라도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2011년 늦봄에서 초가을 사이, 서울에는 이런 식의 이상한 연애가 유행이었다.

     

     

     

    일러스트: RD(@RDRDRDRDRDRDRD)

    글: 김얀(http://kimyan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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