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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낭만적인 데이트에 관하여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3. 4. 12. 10:28

    나는 침대에 누워 책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때론 데이트라는 것이 부담이 될 때도 있는데 특히나 이렇게 눈 내리는 겨울엔 혹시라도 상대방이 "스키 타러 갈래?"라고 물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하지만 지금 나의 애인은 나처럼 방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거의 내 방이거나, 애인의 방이었다. 내 방에서 데이트를 할 때면 애인과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소설의 한 부분을 애인에게 읽어 주곤 했다. 나는 특히 무라카미 류의 '와인 한 잔의 진실'이라는 단편집을 좋아하는데, 애인도 흥미롭게 들었던 것 같다. 애인의 방에서는 주로 음악을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전자 키보드로 연주를 해 준 적도 있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은 "외로운 우주인의 블루스 "였다.


    그렇게 책을 읽어주다 낮잠을 자고, 배가 고파 깨면 간단한 요리를 해먹고, 차와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서 산 과자에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침대 위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의 방은 그렇게 도서관이 되기도 하고, 커피숍이 되었다가 나이트클럽이 되기도 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돈이 없으면 연애도, 데이트도 못한다.' 라던 트윗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은 꽤 많은 횟수로 리트윗 되어 자꾸 눈에 보여 조금 놀랐다. 아직까지도 돈을 많이 쓰지 않는 데이트는 청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통 돈이 없다. 행여나 돈은 있다고 하더라도 낭만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낭만이 없다면 어떤 데이트도 금방 시시해 지는 법이다.


    우리도 가끔은 야외에서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주말의 백화점이나 극장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지옥과 같아서 외출은 언제나 평일에 했다. 야외 데이트라고 해도 애인 집 앞에 있는 시장 구경을 간다거나, 근처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는 정도였다. 시장 골목 구석구석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고, 신기한 과일을 사 먹고 씨앗을 말리고 화분에 심었다. 날씨 좋은 계절에는 한강 고수부지에 모기장을 펴고 그 안 누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봄, 여름은 정말 자주 한강에 갔다.


    또, 기억에 남는 야외 데이트로는 수족관 구경이 있다. 사실 나는 동양에서 가장 좋다는 해운대의 아쿠아리움, 오사카의 카이유칸, 베이징의 부국해저세계를 이미 구경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크고, 화려한 시설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집 근처 횟집 수족관이 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뭔가 대단한 기대에 찬 표정으로 "수족관 구경을 가자."고 하는 애인의 말에 할 수 없이 따라 나섰던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남 태헤란로의 어느 회사 건물이었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이 천장 위에 매달려 있었다. 미술관이 아닌 곳에 있는 미술품은 더욱 신선하다. 매일 반복되는 출. 퇴근 길, 그 안에도 예술은 있다는 말인가?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 뒤로 수족관이 보였다. 수족관은 지하 1층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상 1층까지 우뚝 솟아 있는 원기둥 형태였다. 열대어를 비롯해 상어, 바다거북이 그 안에 있었다.

    "우와, 이 회사 되게 재밌다. 그런데 이런 곳을 어떻게 알게 됐어?"
    무리지어 일정하게 움직이는 열대어들을 보며 내가 물었다.
    "이 건물에서 자주 프로그램 관련 세미나가 열려서 오다가다 봤지. 누나랑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말하며 애인은 커다란 바다 거북이가 한 마리 더 있었는데...... 라며 수족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이 귀엽다. 나 역시 수족관 안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돌고 도는 물고기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조에 가운데는 해초들로 가득하고 물고기들의 움직임이라고는 원기둥 모양의 수족관을 반복해서 도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물고기가 지능이 낮다고 해도, 쟤네는 정말 생각이 없는 걸까? 왜 자꾸 바보처럼 같은 자리를 자꾸 도는 거야?"
    내가 물으니 애인이 답했다.
    "아마, 뺑뺑 돈다는 생각은 못하고 어딘가를 향해서 계속 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진짜 멍청이들이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고, 회사가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학교로, 회사로.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뺑뺑 돌고 있는 물고기랑 다를 바 없잖아?"

    "하긴. 사람이라고 뭐 다를 바가 없네......"

    나 역시도 당장 내일 아침이면 알람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란 생각에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애인이 내 어깨를 감싸며 "저기, 찾았다!"라며 손가락으로 수족관 위를 가리켰다.

    "찾았다! 저기 거북이 한 마리 더 보이지? 어디 갔나 했더니, 해초 안에 숨어 있었나 보다. 원래 저렇게 둘이가 커플이거든."

    그러고 보니 처음에 봤던 커다란 거북이 뒤로 조금 작은 몸집의 거북이 한 마리가 따라 다닌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건지, 아니면 그들도 데이트 중인 건지 색색의 열대어떼 사이를 헤엄치는 두 마리 거북을 보니 괜히 나도 수영이 하고 싶어 졌다. 좁고 뻔한 수족관이지만, 여기저기를 탐험하듯 휘젓고 다니던 그 두 마리 거북이가 그 안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아니, 수족관을 넘어 이 건물 전체에서 제일.


    "우리도 내년 여름에는 꼭 한강 수영장에서 수영 하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애인. 몇 분 뒤 애인과 나는 두 마리의 바다 거북이처럼 나란히 손을 잡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건물 밖, 포장마차에 나란히 서서 어묵꼬치를 먹었다. 따끈한 입김이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내가 입김을 불며 헤엄치는 거북이 흉내를 내자 애인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따뜻한 겨울 밤이다.

     

     

     

     

    글: 김얀(http://kimyann.tistory.com/)

    그림: 알디(http://rdrdrdr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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