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色콤달콤한 연애] 한국의 4월은 안녕한가요? 미래에서 온 편지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3. 22. 14:15

    추운 걸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하필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캐나다의 오타와.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앞에 보이는 강은 오타와 강일까, 리도 강일까? 이름만 다를 뿐 어쨌든 같은 물이 흐르고 있겠지. 두 달 전에는 토론토, 그리고 3주 전에는 퀘벡에 있었어. 여행은 아니었고, 뭐 좀 복잡한 일이 있었어. 물론 내가 늘 그렇듯 남자에 관한 일이야. 현재 온도는 16도. 하지만 오후 5시를 기점으로 다시 떨어지겠지. 그때까지만 나는 여기에 있을 거야. 추운 건 아직 너무 싫으니까.

     오타와에 와서는 줄곧 네 생각을 했어.
    아, 줄곧 네 생각을 했다. 라는 표현보다 줄곧 네 생각이 났다. 라는 표현이 맞겠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레 그리고 아주 반복적으로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2층 침대 때문인 것 같아.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집의 어느 방에는 2층 나무 침대가 있어. 그 방은 내 방이 아니라 내가 그 침대에 누워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우리가 함께 자던 2층 침대와 닮아있었어. 2층 침대 위에서 부둥켜안고 자던 일, 실수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귀찮아하며 주우러 내려가던 일, 섹스할 때마다 신음처럼 삐걱거리며 흔들리던 2층 침대. 

    그날 밤이 기억나? 내가 술을 진탕 마시고 하늘이 꺼질 듯 울던 날. 사실 그날은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서 기분 좋게 위스키를 마셨던 날이었지. 어떤 손님들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 그리고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도 누구와 기분 좋게 맥주를 마셨던 것 같은데 역시 누구와 마셨는지는 모르겠고. 기억이 나는 건 그들에게 내가 했던 말인데, "서른이 넘으니 이제야 술맛이 조금은 달게 느껴져요."라고 했던 말이야. (하지만 아직도 소주와 와인은 잘 모르겠어.) 그리고 퇴근을 한 새벽 2시부터는 다시 서서히 기억이 선명해져.

     일단 나는 집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좁은 거실에 누워서 양치했지. 그러다가 엉엉 울었어.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건 그 다음이었지. 나 스스로를 황당해하면서 다시 욕실로 들어갔어. 크게 울었기 때문에 눈 주위 마스카라는 다 번져있었어. 그런데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울어보기로 했어. 그러면서도 양치는 꼼꼼히 했지. 이것은 몸에 밴 습관이야. 나는 근 10년간을 치과계에서 일해 왔으니까. 그리고는 천천히 샤워. 그러면서 너에게 메시지를 보냈지. 집으로 오라고. 그러고 보면 나는 제대로 취하지 않았던 것 같아. 

     

    잠시만/오늘은 좀 곤란할 것 같아/잠시만/친구들이 우리 집에 다 모여 있어/
    잠시만/나도 가고 싶지만, 오늘은 진짜.../
    잠시만/친구들을 보냈어/
    잠시만/지금 택시를 탔어

      

    도착 시각은 새벽 4시 근처. 나는 벌거숭이 몸으로 이불을 둘둘 말고 거실에 앉아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곧장 내 방 침대로. 그리고 섹스. 그날의 섹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어.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시이나링고의 노래가 반복재생이 되고 있었던 것은 기억해. 그러고 보니 우리는 늘 몇 분 정도 섹스를 할까? 궁금해 하며 시작하기 전에 시계를 보자고 했었는데 번번이 실패했지. 그날은 좀 길게 했던가? 그랬던 것 같아. 뭔가 야한 섹스를 했던 것 같은데 기억해내려고 하니 조금 부끄러운 느낌도 들고...

     하여튼 긴 시간의 야하고 만족스러운 섹스를 끝내고 나는 울기 시작했지. 이야기 도중에 뭔가 너에게 거절을 당한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는 화를 냈고, 또 울고, 욕을 했었지? 그리고 가버리라고 소리 질렀어. 나를 진정시키려는 너의 손도 뿌리쳤지. 그리고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침대가 무너져라 울었지. 술에 취한 내 모습을 보고는 내가 불안해 보인다고 했던가? 위태로워 보인다고 했던가? 그래 결국 그날 무너진 건 침대가 아니라 나였지.  

    그즈음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어. 글을 써서 조금의 돈을 벌게 되었는데 그 조금의 돈 때문에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지. 연애도 수월치 않았지. 자꾸 엇갈렸어. 남자는 많았지만 다들 마음을 뺀 몸만 보여줬지. 아니, 사실 내가 먼저 그랬을지도 몰라.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 기가 막혔지. 부정적인 단어를 쓰긴 싫지만 어쨌든 그즈음에는 뭔가 다 별로였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아이처럼 굴었나 보다. 

    결국, 주섬주섬 입고 나가는 너를 본체만체 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가, 네가 나가던 문소리가 들리고는 더 크게 울었지. 그때 문득 지금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네 말이 생각나서 너희 집 앞까지 쫓아가서 네 마음을 내놓으라고 따지고 싶단 생각을 했어. 너희 집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너의 그 마음을 내 놓으라고 울고 싶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러고 울다 잠든 뒷날 아침. 놀랍게도 숙취도 전혀 없고 말똥하게 뜬 눈으로 생각해보니 문득 겁이 나는 거야. 너에게 마음을 받았다면? 그 마음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 마음을 내 것과 바꿀 수 있었을까? 책임질 수 있었을까?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종종 너와 그날 밤과, 그날 밤의 나와 너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해.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내놓으라고 강물만큼의 눈물을 쏟아냈던 그날에 대해서. 

     쨌거나 너는 안녕하니? 그리고 너의 그 마음도 안녕하니? 문득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안부가 궁금해졌어. 이 길을 따라 곧장 가면, 지금 내가 지내는 집이 나와. 응. 앞에 말했던 2층 침대가 있는 집. 내가 쓰는 방은 그 집에서 가장 큰 방이야. 더블사이즈의 1층 침대가 있지.

     토론토에 오자마자 프랑스계 캐나다 남자를 만났어. 그리고 남자의 본가가 있는 퀘벡에서 3주간 휴가를 보냈다가, 여기 오타와로 함께 왔지. 남자의 직장이 오타와로 변경되었다고 해. 은행인지 보험사인지 어쨌든 그런 쪽의 일을 한다는 것 같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좋은 남자인 것 같아. 아, 그리고 그 2층 침대의 주인은 남자의 두 아들이야. 서양 나이로 3살 쌍둥인데, 뭐가 문젠지 밤마다 침대가 무너져라 울어. 덕분에 오타와에 와서는 밤에 숙면을 취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야.

     그러다 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젯밤에 남자에게 나는 다시 토론토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 그때 다시 2층 침대 방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미안한 얼굴을 하며 아이들 방으로 가는 남자를 따라갔어. 남자는 먼저 2층의 아이를 데리고 내려와 1층 아이의 옆에 눕혔지. 그래도 아이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어. 남자는 어찌할 줄 모르고, 나는 체념하고 있었지. 그런데 별생각 없이 꼬마들을 가만 보고 있으니 얼굴을 침대에 푹 파묻고 우는 모습이 꼭 그때의 나를 닮았어. 그러고는 강물처럼 눈물을 쏟아내는데, 마치, 그 취한 밤에 네 마음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던 내 모습과 닮은 거야.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어.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다가가서 한 아이를 품에 꼭 안았지. 나를 보고는 남자도 나머지 한 아이를 품에 안았어. 그리고 천천히 방을 한 바퀴 걸었지. 그리고 어느 정도 아이가 진정이 됐을 때 눈을 보고 "뭐가 문제야?"라고 처음으로 한국말로 말을 거니, 빤히 보더니 완전히 울음을 그쳤어. 나는 아이의 갈색 눈썹 위에 짧게 입을 맞춰주었어. 그리고는 "아이고, 무겁다."하고는 다시 침대에 내려줬지. 남자와 두 아이는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봐서, 그냥 웃으면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2층 침대를 가졌던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지."라고 말했지. 물론 한국말로 말이야.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어. 다행히 아이들은 이제 울지 않아. 덕분에 나도 아주 안녕한 밤을 보내고 있지. 지금 내 앞에 흐르는 강도 안녕하고, 아직도 겨울에 가까운 차가운 오타와의 바람도 안녕해.

     아, 그러고 보니 벌써 5시가 넘었구나.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제 곧 낮 시간에 아이들을 봐주는 보모의 퇴근 시간이야.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면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아이들 목욕도 시켜야 해.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자신이 없어. 하지만 당분간은 이곳에 아이들과 있을 생각이야. 취할 만큼의 술과 시이나 링고의 노래만 피하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어. 그리고 아직 안녕해. 그럼 당신도 안녕하길.

     


     2013. 4. 어느날.

                                                                                                                              
    RD(@RDRDRDRDRDRDRD)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