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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문 열려있어요 들어오세요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3. 5. 17:44

    비실의 작은 모니터로 너의 모습을 확인 했을 때 심장이 멈춘 듯 했다.
    '어떻게 알고 왔던 것이지? 너는 나의 집을 알고 있었어?' 거듭 생각을 해봐도 그럴 일이 없었다. 알려 준 적도 없고, 사실 우리는 몇 번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네가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내려 그런 일을 하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됐으니 놀라고 당황스러울 수 밖에. 모니터 아래의 숫자는 새벽 2시 몇 분을 알리고 있었다. 회색 점퍼. 눌러 쓴 캡모자. 그리고 한 손엔 뭔가를 들었어. 망치? 그걸로 매일 두드렸던 것?

     거의 두 달전부터 시작된 자정에서 아침 6시 사이에 들리던 두 번의 소리. 단 두 번. 그리고 사라짐. 무엇을 원했던거지? 그 망치로 내 머리라고 깨고 싶었던 거야? 내가 그렇게 미운 짓을 한 적도 없잖아. 아니면 어떤 암시? 암호? 그런데 그런걸 나한테 전해 줄 만큼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였잖아. 몇 번의 섹스. 한 번의 피크닉.

     그렇다면 먼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피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장소는 한강. 우린 각자의 자전거를 끌며 걷고 있었지. 햇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4월쯤? 주말이 아니라 그다지 붐비지 않았던 강변.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역시나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살림살이에 관한 이야기. 이를테면 다이소의 천원짜리 와인잔은 생각보다 꽤 쓸만하다는 이야기. 뭐 이런 이야기들. 굳이 너가 아니어도 할 수 있고, 내가 아니어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근처의 세븐 일레븐에서 샀던 오렌지 쥬스를 마셨고 컵라면을 먹을까? 했지만 그건 관두기로 하고, 얼마간 앉았다가 다시 자전거를 끌며 걸었다. 너도 알았겠지, 그때 그 자리에 너와 내가 아닌 어느 누구가 있었더라도 이런 일들은 흔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하지 않다라는 것만 확인시켜 줄 뿐이었으니깐. 그런데 너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었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던 너는, 묻는 내 질문에 어쩔 수 없는 대답을 하고, 간혹 너의 사진 작업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사진 좋아해?" 라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때는 조금 웃었나? 나 역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네가 묻지도 않았지만 나는 정말 일하기가 싫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몇 번의 섹스(아마도 5번쯤이었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역시나 별다른 점이 없다. 미혼의 남녀 둘이 술을 마시다가 근처의 모텔로 들어가서 섹스를 하고 뒷날 늦은 오후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나온다는 이야기에 그와 나를 대입시키면 된다. 그랬다. 너는 그저그런 남자였다. 특별한 특징도 없었고, 별다른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특별한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몇 번 만난 뒤 나는 영영 어떠한 컨택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서 감시카메라에 잡힌 너를 보고 나는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RD(@RDRDRDRDRDRD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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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두 달전 쯤 새벽이었다고 했는데, 사실 내가 먼저 알아차리진 못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새벽시간은 온전히 잠 들어 있는 시간이었다. 이를 테면 내가 내가 아닌 시간. 다르게 말하면 내가 없는 시간이었다. 그 소리를 먼저 들은 건 앞 집1101호 여자였다. 어느 휴일 오전, 앞 집 여자가 초인종을 눌러 다가와서는 며칠 전부터 새벽마다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드리는 시간이 일정치 않고, 뭔가 소리가 들려 확인 창으로 확인을 해봐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일정하게 두 번의 노크처럼 들린다는 것.

     그 얘기를 듣고부터는 나 역시 새벽마다 잠을 잘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첫째로 무서웠다. 그리고 이제껏 내가 상처 줬던 사람들을 다 떠올려 봤다. 그런 생각을 하다 깜박 졸다가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새벽 1시 경. 그리고 그 뒷날은 새벽 4시 경. 처음에는 노트에 시간을 적어서 어떠한 행동에 공통점을 찾아 의미를 찾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에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 달정도 였다.)

     물론 어느 날은 용기를 내서 현관문 구멍에 눈을 뜨고 몇시간 동안 지켜 본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무서워져서 그냥 포기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전혀 찾아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런 밤들이 반복되다 보니 직장생황이 순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입사한 지 세 달만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새벽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런 순간부터 이상하게 그 노크 소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안심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좀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몇 명의 다른 남자도 만났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과 조금 깊은 단계로 나아갈까 하는 중이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그 새벽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찾아왔다. 강도는 예전보다 조금 더 쎄진 듯 했다. 그리고 매일 빠지지 않았다. 찾아오는 시간대도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로 좁혀졌다. 이제는 정말 그 시간대에 현관문 확인 구멍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지도 알 수 있음이 확실해 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방법은 정말 무섭다.

     그리고 오늘 오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나와 출근 길이던 앞집여자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그 앞집여자는 요즘들어서 그 소리가 더 심해지는 것 같던데, 경찰에 알리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맞아. 앞 집 여자는 또 무슨 죄람. 이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기 전에 찾아 간 곳이 경비실이었다.

      집 여자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출근 길에 오르고 나는 경비실 아저씨에게 CCTV를 확인할 수 있냐고 했다.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먼저 인가? 라고 생각했고, 또 일반인이 이렇게 CCTV 녹화 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확인이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비아저씨의 눈이 반짝였다. 남색 경비복 가슴 주머니에 은색 호루라기도 같이 반짝인다.

     '이렇게 쉬울 줄 알았으면 진작 알아볼걸.' 이란 생각을 했을 때, 경비 아저씨는 어제 새벽 2시경의 CCTV를 플레이 해주었다. 회색 점퍼를 입고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왼손에 가방을 들고 아파트 입구를 걸어가는 남자. 이것은 아파트 입구의 CCTV에 잡힌 모습이다. 이렇게 봐서 그런지 남자의 걸음걸이는 누가봐도 이 아파트 주민의 걸음걸이가 아니다. 누가봐도 당장 예전에 잠시 만난적이 있는 여자의 집 문을 두드리러 간다는 걸음걸이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잡힌 남자의 모습. 남자는 가방에서 작은 망치를 꺼낸다. 그리고 내 집, 11층에서 내렸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바로 그 행동을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다시 엘리베이터 속으로 들어왔다. 행동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정말 정말이지 단순한 노크로 보였다.놀랐지만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무서운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어찌보면 귀찮고 반복적이면서도 소용없는 짓을 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내가 몇 번 봤던 그 남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를 괴롭히려며는 차라리 더 지속적으로 문을 여러번 두드린다던가, 아니면 분뇨를 집 앞에 둔다거나, 또 아니면 차라리 집을 나가는 나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었을텐데. 왜 스스로까지 귀찮게 하는 것이지?

     마음씨 좋은 경비 아저씨는 이 녹화 비디오를 토대로 경찰에게 신고를 하라고 추천해 주셨지만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는 경찰 신고는 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 남자의 근면성실함에 솔직히 반했을 정도 였다.

     경비실을 나와서 쓰레기를 버리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2주전부터는 빠짐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으니, 아마 오늘도 역시 그럴 것이다. 일단 나는 식탁 옆 벽에 걸려진 달력 중 다음 달 달력을 한 장 찢었다. 그리고 검은 유성펜으로 크게 글자를 썼다. 그리고는 새벽2시가 되면 이것을 현관문에 붙일 생각이었다. 이 방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 열려 있어요. 들어오세요.]




    글: 김얀
    출처: http://zine.istyle24.com/Culture/CultureView.aspx?Idx=3625&Menu=13&Page=1&Field=T&Key=&Order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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