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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키위맛 키스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4. 5. 02:23

    "자, 좋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버린 겁니까?"

    "글쎄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정말 조금이라도 짐작이 가는 데가 없나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정말 답답하다구요."

    "좋습니다. 일단 조금 진정하시고 테이블 위에 놓인 키위 한 조각을 드셔 보십시오."

    "네?"

    "거기 깎아 놓은 키위 말입니다."

    "키위? 그런데 제가 왜 갑자기 이 키위를 먹어야 하죠? 저는 그 남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요."

    "허, 그만 진정을 좀 하시고, 일단 그 키위를 드셔 보세요." 

     나는 남자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그냥 물끄러미 가지런히 잘려 있는 키위 조각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약간 지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감각이라는 것과 기억은 엄청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후각과 미각은 사실 시각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을 꺼내올 수 있지요. 남자가 사라지기 전에 분명 당신에게 어떠한 암시를 주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기억해 내려고 하지 말고, 일단 그 잘라놓은 키위를 집어 눈을 감고 천천히 씹어보세요. 아, 그 전에 먼저 냄새를 한번 맡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후각과 미각은 직결되는 것이니까요."

     

    나는 남자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남자의 말을 들어보기로 한다. 나는 잘린 키위 한 조각을 포크로 집고 남자가 말한 것처럼 눈을 감고 코로 냄새를 한번 맡은 후, 천천히 씹은 뒤 삼켰다.

    "자, 억지로 생각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제 질문에 대답부터 하십시오. 먼저 어떤 맛이 났습니까?"

    "음. 글쎄요. 보통 키위처럼 신맛. 신맛이네요. 아, 그런데 끝 맛에 약간 풋사과향이 나는 것 같구요. 그 왜 있잖아요. 연두색 껍질의 사과. 어? 그러고 보니 키위에서 사과 맛이 나는 건 좀 놀랍네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눈을 감고 다른 맛을 찾으려고 노력해봅시다."
    "다른 맛이요? 글쎄요. 하나를 더 먹어보면 확실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하나를 더 드셔 보세요."

    나는 다시 잘린 키위 한 조각을 먹었다.

    "자, 이번에는 어떤 맛이 납니까?"

    "음. 그냥 린같아요. 아까처럼 처음에는 일반적인 키위향. 그리고 신맛이고요. 마지막은 풋사과 맛. 연두색 사과. 그러니까 초록. 옅은 녹색인데."

    "좋습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옅은 녹색...... 아니, 그런데 정말 이게 어떻게 그 남자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거죠? 이제 당신도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렸군요.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상담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비싼 상담료를 받는지 저는 화가 나네요!"

    "하하. 진정하시지요. 저는 제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때는 어떠한 비용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명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단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자, 좋습니다. 거의 기억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그런 의심이 가장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키위 한 조각을 더 드셔 보십시오. 그리고 어떠한 의심과 생각도 놓아 버리시고 키위의 냄새와 맛에 집중하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정말 마지막이에요."

    세 번째 키위 조각은 키위의 가장자리 부분이었는데, 앞의 두 개보다 훨씬 더 신맛이 강했다. 아니면 이미 두 번의 경험 때문인지 혀가 예민해져 있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작은 조각을 어금니로 천천히 으깨고 목 안으로 완전히 넘겼을 때 불현듯 뭔가가 떠올라 한번에 눈을 크게 떴다.

    "아! 그 시큼하고 약간은 달착지근하고. 그리고 맞아! 그 초록색 병!"

    "소주병이네요."

    "네. 맞아요. 그 남자와 나는 우리 집 근처 작은 횟집에서 주로 소주와 해산물을 먹었어요. 멍게랑 해삼 같은 거 말이에요. 남자는 회든, 해산물이든 초장에 찍어 먹지 않았어요. 시큼한 초장 맛에 본디 맛이 가려진다면서. 저는 사실 그 초장 맛으로 먹는다고 말했죠. 아, 맞아요. 그리고는 저에게 술을 따라줬어요. 문득 소주가 어떤 곡물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느냐고 남자가 저에게 물었죠. 저는 모른다고 했어요."

    "좋습니다. 계속하시죠."
    "당밀. 그리고 뭐 조금 신기한 이름을 말했는데, 뭐 어쨌든 그 남자의 친척이 그것을 재배하고 있다고 했고 또... 아 그리고 자기도 기회가 되면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맞아요! 그랬어요."
     
    "자, 다시 눈을 감으세요. 그렇다면 이제 그 남자를 떠올려 봅시다. 제가 말하는 데로 남자는 남자의 친척이라는 사람과 함께 들판에 와 있습니다.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남자의 모습이 그려집니까?"

    "네. 남자는 흰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뒷목과 등으로 땀이 많이 떨어지고 있어요."

    "그렇겠죠. 그곳은 더운 나라입니다. 주변의 일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해보세요. 그리고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십시오."

    "음. 외국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말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곳은 태국 북부와 라오스 국경지역입니다."

    "어? 그것을 아세요?"

    나는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카사바라는 작물입니다. 그것의 뿌리를 가루로 만든 것을 타피오카라고 하지요. 그것이 당밀과 함께 소주의 원료로 쓰입니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작물이지요. 자, 좋습니다. 그럼 이제 그 기억을 다 지워버리시고 자, 다시 눈을 떴다가 감고 제 질문에 답변하십시오."

    "아니요. 이제 그냥 그만 하는 게 좋겠어요."

    "아니, 의뢰인.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남자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유를 알아내야지요."

    "됐습니다. 이제 재미없군요. 그냥 키위나 하나 더 깎아줘요."

    남자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묵묵히 키위껍질을 얇게 깎는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남자에게 물었다.

    "아니, 그런데 카사바라는 게 진짜 있는 거야?"

    "응. 진짜 소주의 원료지."

    "오, 생각보다 똑똑한데? 근데 내가 아까 마지막쯤에 우리나라 말이 아니에요. 라고 했을 때 갑자기 그.렇.다.면. 그 곳은 태국 - 라오스 국경지역이라고 해버리니깐 조금 시시했어. 질문을 몇 개 더 유도했더라면 좀 더 흥미진진했을 텐데 말이지. 어쨌거나 이 키위 진짜 맛있다. 어디서 산 거야?"

    "그때 니가 말해준 경기 청과물에서 샀지. 그 집주인 아줌마는 자기보다 그 집 과일을 꾸미는 것 같아. 그 집은 과일이 아주 반짝반짝하더라."

    남자는 키위를 깎는 데 집중하면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나저나 키위의 끝 부분은 되게 섹시하지 않아? 동그랗게 떨어지면서 중간에 단단하게 꼭지가 있잖아. 니 가슴 같아."

    "풉. 무슨 소리야? 됐고, 이제 우리 무슨 놀이 하면서 놀까? 과일가게 아저씨랑 여자 손님 놀이 하는 건 어때?"

    "아니, 이제 역할극은 그만하고 키스나 하자."

    "풉. 그나저나 진짜 갑자기 그.렇.다.면 그곳은 태국 - 라오스 국경지역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는 진짜 웃겨서 더는 집중을 못하겠더라."

    그러자 남자는 입술로 내 입을 막고 양손을 내 겨드랑이 쪽에 넣으며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몸을 뒤틀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영화관을 가거나 커피숍을 간 적은 별로 없다. 언제나 우리 집에서 남자가 우리 집 근처에서 사 온 과일을 먹으면서 어떠한 역할극을 했다. 그리고 그 극의 마무리는 언제나 키스.

    특히나 키위를 먹고 난 뒤 키스는 예민해진 혀 때문에 더욱 짜릿했던 걸로 기억난다.   

     

    RD(@RDRDRDRDRDRD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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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zine.istyle24.com/Culture/CultureView.aspx?Idx=3752&Menu=13&Page=1&Field=T&Key=&OrderId=1

    벌써 다섯 번째 일러스트. 고마워요 얀누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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