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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아직 보내지 못한 나의 마지막 연애편지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2. 22. 16:39


    Q. 마지막으로 연애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쯤인가?
    A. 작년 여름. 태국의 어느 호텔 방에서. 


    한 달간의 아시아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방콕의 어느 고급 호텔 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수신자는 나의 전 남자친구 D였다. 그때도 이미 헤어진 지 6개월이나 지난 후였는데, 왜 내가 단 하나 남은 편지봉투를 옛 남자친구를 위해 쓰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날은 여러모로 힘든 날이었다. 여행은 막바지였고, 돈은 이미 바닥이 났고, 방콕은 이미 여러 번째라서 더 이상의 관광 욕심도 나지 않았다. 특히나 이날은 온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길거리에서 팔던 1,000원짜리 쌀국수 한 그릇뿐이었다. 게다가 호텔로 올 때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 택했던 수상버스에서 콩나물시루처럼 빡빡한 현지인들 틈에 끼어 삼십 분도 넘게 배에서 시달렸기 때문에 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한참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방콕 시내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고급 호텔은 한국의 옛 직장동료가 휴가를 맞이해 예약해둔 곳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지금 파타야의 어느 맛사지 샵에서 맛사지를 받고, 쇼핑을 마치고 이쪽으로 건너올 것이다.


    나는 일단 호텔 방에 비치된 무료 커피를 연거푸 두 잔씩이나 내려 마셨다. 배가 고팠는데 먹을 거라곤 커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깨끗한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배낭 안 깊숙이 넣어뒀던 짧은 원피스를 꺼내다가 하나 남은 편지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편지지를 보자마자 바로 전 남자친구가 생각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마지막 연인이기도 했고,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3년 가까이 만났기 때문에(D는 영국 사람이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나, 떨어져 있는 기간, 또는 연애 기간 중에도 E-Mail과 편지를 자주 이용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내가 헤어지자는 메일을 보냈을 때 이제까지 내가 보냈던 메일에 일일이 '이날 니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고, 정말 예뻤다.' 혹은 '그날 네가 화난 이유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아직 모르겠다.' '그때 먹었던 피자는 내 인생에 최고였다.'와 같은 메일을 보냈었고, 나는 하나하나 클릭해 읽고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나는 이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니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좀 더 외로워지고 싶다.'라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텅 빈 호텔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고 문법도 맞지 않은 영어로 다시 제대로 된 답장을 썼다. 예전처럼 사랑을 속삭이는 말도, 다시 시작하자는 말도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결국,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지만 그것이 내 마지막 연애편지.


     일러스트 | RD(@RDRDRDRDRDRD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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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누나의 두 번째 칼럼이 나왔다. 누나 글은 참 좋아.
    출처: http://zine.istyle24.com/Culture/CultureView.aspx?Idx=3590&Menu=13&Page=1&Field=T&Key=&Order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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