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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色콤달콤한 연애] 그녀를 잊는 법
    ODOD_One Day One Design/色콤달콤한 연애 2012. 7. 4. 13:29

    오전 열 시부터 줄기차게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두 시간 넘게도 봐온 대략 100명 정도의 사람들.

     

    비교 분석해가며 객관적인 관찰을 해봐도 그녀만큼 눈에 띄는 여자는 없었다.

     

    사실 그녀는 눈에 띄게 대단한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내 눈은 그녀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지금 이 카페 창 밖으로 그녀가 지나간다면

     

    단연코 그녀는 내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아직 그녀를 찾지 못했다. 물론 여기서 그녀를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녀는 지금 서울에 없다.

     

    어쨌든 지금까지 봐온 대략 100여 명의 사람들 중 한가지 공통점은 눈에 띄게 뚱뚱한 사람 역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뚱뚱한 여자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하긴 요즘 여자들의 10명 중 9는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하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여자는 정말 재미없다.

     

    그녀는 사실 몸에 비해 다리가 조금 굵은 편이었는데, "나는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여자다."라고 큰 소리를 치던 여자였다. 한밤중에 라면을 먹고 뒷날 부은 얼굴로 화상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그녀의 민얼굴 - 그것도 머리가 엉망이 되고 얼굴이 퉁퉁 부은 얼굴을 보고 조금 놀라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그것은 꽤 신선한 행동이었다.) 절대 미인형이 아닌 얼굴임에도 "나는 너무 예뻐서, 좀 더 못생겨지고 싶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술을 먹지 않고도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런 식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이야기를 꽤 진지하게 그리고 자주 했다.

     

    다시 카페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어쨌든 커피숍 밖을 지나간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어디론 가를 향해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사실 그들은 지금 자신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을 꺼내입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옷을 고를 땐 옷가게에서 가장 멋진 옷을 고른다.

     

    하지만 지금 밖을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의 옷은 다 그렇고 그런 옷들이다.
    (물론 그중에도 몇몇은 꽤 근사한 옷을 입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주 적다.)

     

    그녀는 패션 감각이 아주 꽝인 여자였다. 그리고 쇼핑도 싫어했다. 옷이나 신발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쇼핑센터를 돌며 하루를 보내는 일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도 말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 함께 장을 보러 그녀의 동네 시장을 돌고 있을 때였는데 그녀는 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얇은 원피스에 옷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의 운동화를 신은 노브라 차림이었다. 한번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서 쇼핑몰에 있는 영화관에 간 적이 있다. 표를 끊고 시간을 보내던 중 액세서리 가게가 있어 그녀에게 어울리는 귀걸이를 볼까 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외출할 때 그녀는 항상 액세서리 통에 담긴 두 개의 귀걸이를 보여주며 이 옷에는 어떤 귀걸이가 어울려? 라고 자신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곤 했는데 사실 둘 다 전혀 예쁘지 않은 귀걸이였다. 그래서 이번에 좀 멋진 귀걸이를 사주고 싶어 악세사리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녀는 도통 고르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러면서 "가진 것이 많아서 슬픈 나라는 아프리카야."라는 말을 해서 점원과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결국, 그날은 영화만 보고 왔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촌스러운 그 두 개의 귀걸이는 어디서 난 건지 정말 궁금하다.

     

    사실 나는 원래부터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쪽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한 자세로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지금 빨대를 꽂은 것은 두 번째 아메리카노다.

     

    종일 읽어도 다 못 읽을 양의 책도 가지고 왔다. 노트북도 챙겼다. 그림을 그려볼까? 하는 생각에 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노트도 챙겼다. 하지만 나는 두 시간 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카페 밖의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렇게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다.

     

    이렇게 시시각각 그녀와 같은 성(性)의 사람들이 나타나 줘서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그녀를 찾고 있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로 담담한 내 모습에 나도 감탄할 지경이다.

     

    그녀는 툭하면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표현해 봐."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내가 어떤 대답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로 술에 취해 길거리에 흔한 모텔방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냐면,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도 네 생각을 안 하면 사정을 못 해.'라고 말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뭔가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휴대폰을 켜서 메모장에 내 말을 입력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그럼 나의 어떤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짓을 하는 거야? 구체적으로 말해 줘.'라고 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그냥 졸린 체 해버렸다. 그러자 돌아누운 나를 끝까지 끌어당기며 집요하게 묻던 그녀. 그리고 그 얌체 같던 표정.

    나는 이내 다시 그녀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역시 핸드폰을 가져 오지 않길 잘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2011. 4. 5 그녀와 헤어진 첫째 날.

     

     

     

    RD(@RDRDRDRDRDRDRD)

    글: 김얀(http://kimyan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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