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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OURFULSIGN Magazine no.1
    ODOD_One Day One Design 2010. 12. 11. 01:07
     내 글이 어딘가에 실릴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정기형의 도움으로 일어났다. 컬러풀사인 매거진은 정기형이 만들어가는 집앞카니발을 기념하여 발간한 매거진인데, 300부 발간이 아쉬울 정도로 양질의 컨텐츠와 좋은 사진들이 많은 매거진이다. 꿈같은 카니발이 지나간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컬러풀사인 매거진에 대한 포스팅을 당연히 했을거라고 생각했다. 바보같기는. 나는 정기형의 부탁으로 문래동의 413프로젝트 식구들과 압구정의 므스크숍(MSK SHOP)의 인터뷰를 맡았다. 처음하는 인터뷰에 많이 부족하고 어설펐을텐데, 정기형의 격려로 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나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정기형에게 리스펙-! 
    * 413프로젝트 식구들. 매거진들고 찾아뵐게요- 

    아래는 인터뷰 원문

    <문래동 413프로젝트 인터뷰>
     2호선 문래동 공장단지는 서울의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공장단지 중 한 곳이다. 문래동은 60년대 이후로 대한민국 철강재 1번지로 활황을 이루었으나 몇 년 전부터 저렴한 임대료 덕에 여러 예술가들의 둥지가 되고 있다. 바로 옆 영등포에는 타임스퀘어가 들어서있고, 서울시는 영등포부터 문래까지 ‘쇼핑-문화벨트’를 만드는 계획을 짜고 있다. 현재 문래동에는 150명이 넘는 작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10월의 한파가 찾아 온 어느 날 얼마 전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열린 <MEET 페스티벌> 오프닝을 성공적으로 마친 41-3번지 일명 ‘413프로젝트’ 팀의 김보리, 김준수를 만났다.(다른 멤버인 정동훈과 송곳은 부재)

    * 이번 전시로 인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준수: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아주 의의가 크다. 이 413이라는 공간을 열고 각자의 작업으로 전시를 연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무척 기쁘고 앞으로도 이 작업을 이끌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전시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 이번 <MEET> 전시를 하면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 보리: 작업에 대해 딱히 많은 이야기를 담지는 않았다. 이번 MEET 페스티벌은 다른 사람들에게 413이 어떠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동훈이 같은 경우는 탈젠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어, 남성의 방에 큰 화장대가 있다던가 여성의 방이 오히려 더 지저분하다거나 하는 일들. 그것을 공간적인 측면으로 풀어냈다. 송곳은 이번 작업으로 사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 준수: 지금은 아닌 집이 많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형광등을 켜면 한 번에 켜지지 않고 깜빡거리다가 켜지고는 했었다. 그 깜빡거림 속에 익숙한 물건이라도 착각을 하고 마는데 그러한 착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단순한 이야기다.

    * 문래동에 둥지를 튼 이유가 있나?

    - 보리: 일단 금전적인 이유가 제일 큰 이유. 문래에 특별히 무언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문래 예술 공장도 작가들의 공모를 받는 것이지 문래에 있는 아티스트들을 아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문래동을 거처로 정한 것은 다른 곳보다는 교통이 편리한 편이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이 정도 공간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크다.

    * 문래동에 처음 와서 느낀 것은 동네 자체가 많이 정감이 가는 분위기가 풍겼다.

    - 보리: 이곳은 오래 된 공장이 많다. 자연스레 오래된 물건도 많고 그 물건들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풍경이 문래동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이미지를 주는 것 같다.

    * 여러 행사를 진행하면서 소음으로 인해 주변 분들과 마찰은 없었나?

    - 보리: 이쪽은 문래동의 다른 곳보다 주민 분들이 많이 거주하고 계시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늦게까지 소음이 날 경우에는 주변 분들이 조심스레 이야기 해주시는 편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먼저 조용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공장 분들은 관심을 가져주시나?

    - 보리: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 지속적으로 행사를 갖음으로써, 득과 실이 있다면?

    - 보리: 사교를 하면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사교가 이루어진 것이 가장 큰 득이라고 생각한다. 413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어감으로서 문래동에 그런 집단이 있다는 것으로만 알아주는 것으로도 큰 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실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준수: 같은 생각이다. 우리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득이라고 생각한다.

    * 다음 사교 계획은 어떻게 되나?

    - 보리: 413이 문래동에 둥지를 튼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 전에는 주변 작가들과 왕래가 없었지만 최근 열린 ‘문래 아카이브’로 인해 왕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전에 연락을 해, 주변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짧게 인터뷰를 하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재주를 발휘해 재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어 웹페이지와 오프라인으로 공개를 하고 그동안의 작업들도 413에서 전시를 하고 참여했던 작가와 문래동을 찾아주는 분들을 초대 할 예정이다.

    * 413에서 작업을 할 때 서로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칙 같은 것이 있나?

    - 보리: 우리는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칙은 따로 없다. 매 주 화요일에 모여 회의를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그 때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 문래동에서 1년 동안 머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보리: 거의 모든 일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전시를 하고 기자분이 연락을 해주셔서 인터뷰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아트옥션, 사교 모임 등 우리가 이곳에서 했던 모든 것들이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는 한 교수님이 수업의 일부로 학생들을 데리고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 준수: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이 41-3번지라는 공간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오래된 공간에 구조도 독특하지만 처음 이 곳을 보면서 ‘여기다’라는 느낌이 왔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설득하고 이 공간에 둥지를 트면서 공사를 하는 것도 무척 기억이 남는다. 두 번째로는 송곳이 413에 합류한 일이 기억이 남는다. 413은 세 명이 남자이고 송곳만 여자이다.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송곳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와 합류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둘의 머리가 굉장히 짧다. 이유가 있나?

    - (동시에) : 편하기도 하고 돈이 없기 때문에.

    - 준수: 작업실에 이발기가 있기 때문에 따로 미용실에 가지 않는다. 사실 작업에 더 열중하기 위해 꾸미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 보리: 나 같은 경우는 작업실에 손님이 온다거나 하면 그래도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 413이 가지는 다음 관심사는 어떤 것이 있나?

    - 보리: 중계에 관심이 있다. 예전에 문득 영화나 TV에 나오는 대스타들이 물론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겠지만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심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 유명한 대스타라던가 유명한 작가, 아니면 유명한 특정 장소에 음성만 전달하는 송수신기를 설치해서 음성만 전시하는 곳으로 보내는 것. 예를 들어, 미쉘공드리(프랑스 감독)에게 자그마한 음성 송수신기를 주어서 전시를 보러 온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은 이 소리가 정말로 미쉘공드리에게 나는 소리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하는 것이다. 꼭 미쉘공드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주고 미쉘공드리에게서 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맘 같아선 실제 미쉘공드리에게 송수신기를 주어 소리를 전달받고 싶지만, 시차 문제도 있고 개인적으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라 더 하고 싶다. 물론 이 작업도 꼭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는 작업이다.

    - 준수: 블로그 제목이 ‘다목적’이 듯이 관심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고의 관심사는 413과 내 작업 그리고 개인전. 그리고 개인 후원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팔릴 수 있는 작업들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설치 작업이 많아, 어떻게하면 장기적으로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413 작업과, 내 작업, 그리고 이병우씨의 콘서트.

    * 다른 친구들은 어떤가?

    - 보리: 동훈이는 아까 말했듯 탈젠더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예전이었으면 하지 못했을 작업들. 작업들을 위해 실제로 공부도 많이 하는 편이고 자신이 작업에 대해 제한을 두지는 않고 있다. 예전처럼 조형물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번 MEET 전시처럼 설치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 작업은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탈젠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 얼마 전 문래아카이브 전에서도 탈젠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 같던데

    - 보리: 그 조각은 실제 동훈의 얼굴을 석고로 뜬 것이다. 그 석고물에 가발을 씌우고 세밀하게 컬러링을 해서 여자로 만든 것이다. 송곳도 설치작업에 관심이 많이 있지만 아직은 사진에 많이 집중하는 것 같다.

    * 바쁜 와중에도 블로그 업데이트를 꾸준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건가?

    - 보리: 강박관념은 가지고 있다. 요즘은 블로그 관리에 많이 소홀해있다. 사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이 있는데, 모든 일을 포스팅을 하지는 못한다. 사진으로는 꾸준히 남겨놓고 있다. 그럼에도 블로그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친구들이 블로그를 보고 413이 어떠한 작업을 하는 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블로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블로그를 꾸준히하고 있다.

    - 준수: 따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냥 쓰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 내용을 포스팅하는 편이다.

    * 블로그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준수: 사실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어떻게 운영해야 잘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른다. 그냥 그 당시에 좋았었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것들을 기록하는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정확히 내가 어떤 식으로 이것들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 최근에는 젊은 작가들이 해외에서 많은 곽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413식구들은 아직 해외활동에 계획은 없나?

    - 보리: 아직은 로컬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한국에서만 해야 재미있는 작업들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한국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작업들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못해 본 작업이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머물면서 작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해외에서 우리 작업들을 초청한다고 언제든 갈 생각이 있다.

    - 준수: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생각은 있다. 지금 내가 표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우리나라이다.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이고, 나를 움직이는 것들도 우리나라도 우리나라고 내가 배우고 가장 잘 아는 것도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가장 최적지는 아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옮겨 갈 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확대되고 다른 공간에서 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오면 좋은 기회가 생겨서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 사실, 아시아프(ASYAAF) 전시회 1회 때, 사실은 중국에 갈 수 있었다. 798소속 전업 작가로 제의가 들어와서 사인만 하면 됐었는데, 그 때는 너무 무서웠다. 여러 이유로 그 때 가진 않았는데, 지금은 가끔 후회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다시 그런 기회가 왔을 때, 가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노력 할 생각이다.

    * 413식구들은 작업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 자극도 많이 받을 텐데?

    - 보리: 물론이다. 준수에게서는 작업에 대한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다.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작업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진취적이며 추진력이 대단하다. 동훈의 경우는 무척 섬세하고 꼼꼼하다. 감성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척척해내는 편이다. 송곳은 송곳만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다. 그 감성도 무척 많은 자극이 되고 413식구들 모두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해주는 편이다. 서로 분야가 달라서 자극이 되는 좋은 영향이 많은 것 같다.

    * 그런 자극을 받으면서 받는 조급함은 없나?

    - 보리: 물론 조급함은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번 MEET 전시처럼 다른 재단에 공모를 내고 그것이 발탁이 되어 후원이 되고 이러한 일이 계속 이루어지면 좀 더 하고 싶은 작업도 할 수 있지만 하고 있는 작업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사실 MEET 프로젝트도 가볍게 시작을 했다. 하지만 계속 진행이 되면서 욕심이 생기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큰 전시가 되었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되지만 이 문제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 한국예술가들의 학력과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준수: 전반적인 우리나라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주 심각한 문제. 다른 나라에 미술 박사라는 학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미술박사라는 학위가 존재한다. 어떻게 미술박사가 존재할 수가 있는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는 다들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또 사회가 그것을 부추기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을 신뢰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내 생각에 예술이 교육이 되고 답습이 되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찾아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나름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주입식으로 채워 넣으려는데 급급하다. 그 답은 그 사람들의 정답이지 우리들의 정답은 아닌 것이다. 박사학위를 딴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은 거의 서양철학이다. 서양사람들 입장에서는 동양사람이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서양미술을 공부하고 오면 코웃음을 친다. 마치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탈춤을 배워, 자신이 탈춤을 잘 춘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거다. 외국인이 탈춤을 배워도 무언가 어설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어설플 수 밖에 없는 것은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술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배명훈씨나 김아타씨 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이 더 주목을 받는다. 이런 문화는 아직 우리 문화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감동해야 할 때는 유치원생의 그림을 봤을 때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순수한 마음과 감성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다. 자꾸 능숙해지고 능률해지면 그 사람은 철학을 공부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이 좀 더 경쾌해지고 매력적이고 다양해지려면 고학력 위주의 사회 관습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관습이 변화하려면 시간도 지나야 하지만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 뿐 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가도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고, 국가를 끌어가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하고, 그 의식이 바뀌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교육이 바뀌어야 지금 이러한 사람들의 의식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기다려야 하지만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고, 너무 필요한 문제이다.

    * 마지막으로 413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보리: 413은 작업과 전시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413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

    - 준수: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문래동이라는 곳에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더라 하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언제든지 맘 편히 찾아와 놀다갔으면 좋겠다.


    <MSK SHOP 인터뷰>

    보통 편집샵이라 하면 한 개의 브랜드가 아닌 여러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놓은 가게를 칭한다. 여러 브랜드를 비교해보고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마음껏 찾아볼 수 있는 곳.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편집샵은 유동인구가 원활한 곳에 위치하고 고객들을 반긴다. 하지만 2년 전에 소리없이 오픈한 MSK(므스크)숍은 다르다. 그들의 가게는 압구정 빌딩 숲 엘리베이터도 닿지 않는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조급해하지 않고 가만히 그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므스크를 찾는 이 누구나 찾아와 누구나 만족을 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것을 누구보다 바라는, 므스크에 진열된 옷들처럼 차분해보이지만 위트가 숨어있는 므스크숍의 오너 민수기를 만났다.

    Q: 민수기라는 이름은 가명인 줄 알았다.

    - 빼어날 수에 터 기 자. 므스크도 민수기의 므스크(MSK)다.

    Q: 므스크숍을 오픈한지 곧 2년이 된다.

    - 나도 무척이나 신기하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디자이너, 좋은 직원들을 만나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므스크와 관련 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Q: 므스크가 운영된 지 1년에서 2년이 되어 가는데 느낀 점이 있다면?

    - 첫 번째로 ‘하면 된다.’라는 것을 몸으로 많이 느꼈다. 겁도 없이 처음 오픈 할 때 브랜드가 3개 였다. 첫 달은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왔다. 첫 달이 지나고 나니 매출이 안 나오더라. 내가 제대로 하는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상황을 극복해내려고 원인을 찾고, 머리를 굴리고, 신경을 쓰다보니까 어떻게든 되더라.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고마운 것인지를 너무나 깊게 느끼고 있다. 므스크를 이끌어 가는 직원 모두 므스크를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고맙다. 좋은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있고, 핏보우의 전경빈 디자이너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Q: 편집샵이라고 하면 유동인구가 많고 찾아오기 쉬운 곳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므스크숍은 압구정 골목에 엘리베이터도 닿지 않는 빌딩 6층에 자리해 있다.

    - 내가하는 셀렉숍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옷을 좋아하고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고객이라면 브랜드를 취급하는 편집숍이 어느 위치에 있던 찾아올 수 있겠다. ’라는 믿음이 있었다. 때문에 굳이 1층에 자리를 잡기위해 발버둥 치지도 않았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매장을 오픈한다고 해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는 위치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만큼 므스크에 입점하는 브랜드와 내가 잡은 컨셉에 자신이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일본의 경우 언더커버나 넘버나인, 마르지엘라 매장은 사람들이 찾기도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브랜드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다른 숍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런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Q: 므스크를 찾는 사람이 예전보다는 많이 늘어난 것 같다.

    - 우선, 우리 가게까지 찾아오는 분들이 너무 감사하다. 또 옷을 너무 좋아해주셔서 우리도 깍듯하게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또 고객님들이 찾아오셨을 때 대접받는 기분이 들도록 노력하다보니, 퍼스널 쇼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더 찾아주시는 것 같다. 우리는 고객님들이 문밖에 나가실 때도 문밖까지 나가서 인사를 드리고 있다. 이런 세세한 점들이 모여 고객님들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 매장을 찾아주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손님 중에는 므스크숍이 알려지는 게 싫다고 하시는 손님도 있다. 대중화되는 것이 싫다고. 이렇듯 므스크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가지는 자부심도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므스크를 찾아주는 고객에 맞추기 위한 디테일한 면까지 신경을 쓰는 편이다.

    Q: 편집샵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2005년에 편입을 준비하며, 나는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을 것일까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쉬고 계시지만, 아버지가 동대문에서 원단 가게를 하셨다. 자연스레 어렸을 때부터 옷을 많이 접했다. 초등학교 때도 아버지가 가져다주신 옷들을 입고 옷을 입는다는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고, 중 고등학교 때는 옷에 대한 열정이 절정에 달했다. 그런 세대를 거치고 대학교까지 졸업하니 지금까지 옷을 좋아한 것이 한 순간에 유행과 사춘기의 객기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로 생업으로 할 수 있는 것일까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나는 무조건 이쪽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편입한 학교를 들어가자마자 휴학을 하고 내가 어찌하면 의상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포토그래퍼 다함이 형에게서 핏보우(Fitbow)의 전경빈 디자이너를 소개받았다. 나는 알바 할 생각으로 갔는데 경빈이 형이 자신은 아르바이트는 구하지 않는다고 나와 같이 핏보우를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하니 어찌할 것이냐를 물었다. 고민을 하다가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의상 쪽 일을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4년 동안 핏보우에서 일하면서 모든 것을 배웠다. 박스포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유통과정, 디자인까지. 핏보우는 조그맣게 오프라인 매장이 있었는데, 오프라인 매장 매니저도 해봤고 백화점이나 다른 곳에 미팅까지 직접 맡았었다. 회사가 돌아가는 전반적인 시스템을 배우게 된 것이다. 4년이 지나고, 나도 무언가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핏보우에서 나왔다. 편집매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웨덴 브랜드 아워레가시(Our Legacy)를 알게 되었다. 스웨덴 브랜드 인 것을 알고 느낌이 너무 좋아, 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아워레가시를 한국에 들여오고 싶은 생각에 돈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스웨덴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내 소개를 하고 아워레가시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얼마 후, 아워레가시 쪽에서 미팅을 와도 된다는 답장을 받고 스웨덴으로 떠났다.

    Q: 그냥 맨 몸으로 스웨덴으로 떠난 것인가?

    - 스웨덴에 미팅 갈 때 이것저것 챙겨가게 되었다. 아워레가시(Our Legacy) 쪽 친구들이 사진에 민감하고 감성적인 친구들이라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다함이형의 사진과 다른 아티스트들의 사진, 그래피티 아티스트 윤협이형의 그래피티 사진, 주변 뮤지션들의 CD, 또 도자기를 굽는 친구가 있어서 도자기도 챙겼다. 이것들 모두를 한글이 써져 있는 한지로 포장을 했다. 인사동에 가서 하회탈도 사고, 태극모양의 부채도 샀다. 스웨덴으로 떠날 당시 운 좋게 스톡홀름 대학원에서 아는 분과 연락이 닿아 그 친구와 함께 아워레가시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브랜드를 진행 중에 있고 외국 바이어가 바잉을 하러 왔을 때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하느냐. 모국어인 한국어로 하느냐에 따라서 임팩트 자체가 다를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스웨덴어가 가능한 친구를 데리고 간 것이다. 스웨덴에 3일 동안 머물면서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스웨덴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 아워레가시의 물건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 해 10월에 샘플을 받아 신사동 예전 굿오브닝 자리에 있던 갤러리에서 런칭 파티를 했다. 그리고 런칭 파티 사진을 아워레가시에 보냈다. 다행히 아워레가시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밀어부친 건 한국식 비즈니스 였는데, 스웨덴에서 느끼기에 차별화 된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Q: 므스크는 유독 국내 디자이너의 옷들이 눈에 띈다.

    - 한국 디자이너 밑에서 일하면서 제일 느낀 것이 디자이너의 옷이 고객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서울시에서도 지원도 해주고 상황이 꽤나 나아진 점이지만 2005년만 해도 전혀 지원이 없었다.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의 지원을 해주려면 므스크를 통해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므스크에 들어오는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1년이 다르게 성장할거라 예상한다. 또, 한국 편집매장의 경우 대부분 해외 디자이너 기반의 옷들이 대부분이다. 내 꿈 중 하나는 한국디자이너의 제품의 유통이 원활해져 디자이너의 꾸준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더 좋은 제품의 옷들을 더 많은 사람이 만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므스크숍에 입점하고 싶어 하는 숍이 되고 싶다.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므스크숍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해야하는 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Q: 얼마 전에는 스펙테이터의 디자이너 안태옥의 한정 헌팅재킷이 발매되었다.

    - 3장 한정이었는데, 어제를 마지막으로 모두 다 팔렸다. 한국디자이너의 가능성을 실제로 보면서 많이 놀라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보지 않고 그 옷의 디테일과 퀄리티를 보고 구입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옷이 좋다면 해외브랜드, 한국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제품이 좋으면 구입하는 시작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Q: 해피삭스는 선물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 한국 칩먼데이와 제너릭 서플러스, 펜필드, 해피삭스를 유통하는 분과 알고지내다 디스트로뷰션을 받게 되었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만원이 넘는 양말을 한다는 것이 모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했지만, 처음에 말했듯 자신이 있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지금은 괜찮은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Q: 얼마 전에는 미국에 다녀 온 것 같던데

    - 미국에 다녀 온 이유는 아직 해외로 알려지지 않은 미국 로컬 브랜드들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현재 디스트로뷰션 진행 중인 브랜드가 있고, 소규모 브랜드들과 협의 중에 있다.

    Q: 해외 바잉의 기준은 무엇인가

    - 한국 디자이너와 똑같은 기준으로 바잉을 해오고 있다. 해외라고 해서 더 특별하고 하는 것은 없다.

    Q: 물건을 바잉할 때, 예상과는 달리 저조했던 물건이 있었나?

    - 가끔 그런 품목이 있긴 하지만 바잉을 할 때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담담히 넘기는 편이다.

    Q: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의 입점 기준은 무엇인가.

    -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유통망이 적은 한국 디자이너의 입점을 선호하는 편이다. 만약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러 멀리서 우리 숍까지 찾아와주었는데, 그 제품이 다른 곳에만 있다면 우리 숍을 찾아오는 의미가 없지 않겠나. 그래서 최대한 유통망이 적은 브랜드를 입점하고 있다. 해외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로컬브랜드 위주로 최대한 다른 곳에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들을 입점하고 있다. 그래야 다른 숍과 차별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미국에서 들어오는 브랜드 중 하나는 DJ SOULSCAPE 형이 소개 시켜준 한국계 디자이너 시키라는 브랜드인데 우리 숍과 맞지 않아 입점하지 않기로 했었다. 출장 가는 날 디자이너와 운이 좋게 컨택이 되어 괜찮은 두 브랜드를 소개 받게 되었는데, 이번에 그 두 브랜드 모두 한국에 소개 하게 되었다. 이 브랜드들은 민준이형이 아니었으면 절대 다른 바이어들이 컨택할 수 없는 브랜드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Q: 민수기가 생각하는 도메스틱 브랜드나 로컬브랜드를 가져올 때, 시장규모를 예상할 수 있는 민수기만의 기준이 있나?

    - 솔직히 말하면 나는 숫자에 밝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감을 많이 믿는 편이다. 이 부분은 우리 숍에서 판매되는 물건과 한국시장의 분위기를 봤을 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상품을 가져오는 편이다. 아워레가시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에는 한국은 클래식에 대한 인식이 저조했을 때라 ‘유니클로랑 비슷하다.’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분위기의 옷들이 분명히 성공할거라는 감이 있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아직까지 므스크숍에서의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고, 핏보우에 몸담고 있을 무렵. 한 손님이 옷을 구입하셨는데 그 옷이 불량이었다. 그래서 다시 수선해서 보내드렸는데, 또 불량이 났다. 이렇게 세 번 정도 옷이 오갔는데, 알고 보니 안감에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로 손님이 화가 나셔서 매장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있었는데 경빈이 형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손님께 옷을 그냥 드리고 옷값을 돌려드렸다. 이 후, 그 손님은 지금도 우리 매장을 찾아주신다. 매장에 찾아주실 때 커피도 사다주시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직접 이런 일을 겪어보니 손님께 버르장머리 없게 행동하고 나쁘게 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Q: 므스크숍에 입점해있는 브랜드는 수량이 어떻게 되나?

    - 브랜드마다 다르다. 핏보우처럼 단일 품목이 잘나가는 브랜드는 많은 수량을 발매하지만, 다른 브랜드는 3-5장 정도로 소규모로 운영된다.

    Q: 므스크에서 생각하는 한국 편집숍의 위치는?

    - 일단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포화상태이다. 내가 들은 편집샵만 해도 오픈 예정인 편집샵이 3곳이라고 들었다. 현재 한국 편집샵은 과도기 상태이다. 아마 2년 안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Q: 므스크는 어떤가?

    - 므스크는 도약의 시기인 것 같다. 좀 더 많은 고객과 만나기 위해 1층으로 내려 갈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위치는 유지할 생각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Q: 므스크는 어떤 것에 영감을 받는가?

    - 다른나라의 샵을 보기도 하고 해외 매거진을 보기도 한다. 음악도 장르 상관없이 많이 듣는 편이다. 아주 많은 매체에서 영감을 받는다.

    Q: 마지막으로 므스크는 어떤 사람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나?

    -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물론 옷을 구입함에 있어서 품질이나 가격대비와 기회비용 등을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 디자이너가 왜 이런 디테일을 의도했는지 고민하고,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손님들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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